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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고려시대에도 족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었으며 족보에 가까운 형태의 기록물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家譜, 家牒, 世譜, 氏譜, 譜 등의 명칭으로 불리는 家牒類와 八祖戶口와 같은 형식의 世系圖, 族圖가 광범위하게 작성되었을 뿐 아니라 이를 활용한 政案, 吏案 등도 마련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가족 단위가 중심이 되어 그 直系의 선대 계 보들과 傍系로는 대체로 그 親屬의 최대 범위 정도의 계보들을 정리한 기록에 불과한 것으로 실제로는 정의와 같은 완전 한 형태의 족보라 할 수 없는 초기적인 형태의 것들이었다.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 초기에도 「水源白氏族譜(1405)」, 「文化柳氏族譜(永樂譜, 1423)」 등 20여 종이 「안동권씨족보 (성화보)」를 전후하여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모두 序·跋文만 남아 있는 것으로 족보의 핵심 부분이라 할 子孫 錄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15세기 족보로는 유일한 「안동권씨족보(성화보)」는 1562년(명종 17)에 간행된 「文化柳氏族譜(嘉靖譜)」와 함께 男歸 女家婚, 子女均分相續制, 子女輪回奉祀, 兩側的 親族制 등 조선후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女系를 존중하는 조선전기 사회 상이 반영된 족보의 특성들을 보여준다.
「안동권씨족보(성화보)」의 기재방식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親孫과 外孫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기록하였다는 점, 사위 를 壻나 女가 아닌 女夫로 표기했다는 점, 여성의 재혼을 인정하여 前夫, 後夫 등의 표현을 그대로 족보에 표현하였다는 점, 嫡子와 庶子를 구분하지 않고 출생순으로 등재한 점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안동권씨족보(성화보)」가 性에 차별을 두지 않고 모든 계보를 수록하고자 하는 兩側的(bilateral) 系譜觀 하에 편찬된 大同譜的 성격의 족보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선 전기 족보의 계보관념이나 편찬 방식은 朱子學이 완전히 뿌리를 내리고 宗法制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질서가 강조되는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서서히 변화해 갔다.
한편 조선후기에 이르게 되면 족보의 양적 증가와 함께 족보의 변경· 위조도 두드러지기 시작하였다. 兩亂 이후 신분질 서가 동요하는 속에 족보가 양반 신분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족보의 간행은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고, 족보 간 행이 전체 성씨의 다수에까지 확대되자, 기존의 양반들이라 할지라도 족보가 없으면 양반 체면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더욱이 문중이 확립되고 문중 간 경쟁이 발생하면서 족보는 顯祖들을 나열하여 문중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선조들의 계보와 관직 등에 대한 비사실적인 과장, 수정 및 조작이 가해지는 경우도 생겨났다. 이는 양란 이후 새로이 성장하던 신흥 세력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기존의 유명 가문에 자신의 계보를 연결 시키기 위하여 本貫을 고치거나 동일 姓貫이라도 顯達한 조상이 없는 派系가 顯祖가 있는 派系에 적당히 계보를 연접시켜 合譜하는 예도 많았다.
또 동일 姓貫만으로도 父系 同族으로 생각하는 父系 系譜觀이 자리 잡게 됨에 따라 常民들의 경우에도 쉽게 양반들과 동 족으로 생각되며 족보에 수록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더 나아가 족보가 없으면 상민으로서 군역을 져야 하니, 이를 피하기 위해 納粟을 통해 官爵을 사거나, 호적·족보를 위조하기도 하여 양반을 사칭하는 경우도 증가하여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조선후기 족보에는 본래의 자손록에 등재되지 못하고 別譜, 別錄의 형식으로 수록된 系譜가 존재하는데, 이 중 일부는 이 와 같은 상민들의 족보 참여와 관련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일제시기에도 이와 같은 경향은 계속되었다. 더욱이 전근대적인 신분의 굴레가 사라지면서 족보 편찬도 일반화되어 족 보의 간행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일제시기 통계 자료에 의하면 실제로 1910년대, 1920년대 전국 간행물 통계에서 족보는 문집과 함께 언제나 1, 2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특정 인물의 발의에 의해 족보의 간행이 제안되면, 通文을 돌려 문중의 대표자들이 始祖의 齋室 등 일정한 장소에서 宗會를 개최하고 이를 협의한다. 종회에서 족보를 편찬·간행할 譜所와 업무를 담당할 都有司 및 有司가 결정되고 유사들의 업무분장이 확정되면, 유사는 맡은 임무에 따라 각 派 내 가족의 대표자들에게 족보의 간행 사실을 알리고 족보에 수록될 해당 내용을 기재한 譜單(子)을 제출토록 요구한다. 이렇게 해서 보단이 수집되면 이를 기존 족보 등 관련 자료와 대조하여 사실 여부와 변경 내용을 확인한 후, 서·발문을 청탁 수합하고 조판 방식을 확정하는 등 본격적인 족보의 편찬과 간행에 들어간다.
족보는 30년 단위로 수정·증보하는 것이 보통인데, 발간시 소요되는 경비는 대개 禮錢(譜單을 제출하는 가족별로 수록된 인원수를 감안하여 납부하도록 책정된 금액) 에서 충당하게 된다. 족보 책판의 板刻, 譜紙의 조달 등은 譜所 부근의 사찰을 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몇몇 유력 가문의 경우 주변 고을의 수령, 친분과 재력이 있는 인물들로부터 禮錢을 지원받기도 한다. 족보의 편찬을 주도하는 사람이 고을 수령인 경우가 많은 것도 족보의 발간에 많은 재원이 필요한 사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족보의 간행이 완료되면 만들어진 족보를 배포하고 간행을 마무리한다. 목판본으로 발간된 경우 板木의 보존을 위해 별도의 藏板閣을 세우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여기에 位畓을 설정해 두어 제반 부대비용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한다.


서문과 발문에는 보통 족보 간행의 목적과 의의, 간행과정, 姓貫의 유래, 간행 주체 등이 서술되어 있다. 족보에 따라서는 각각 2편 이상의 서·발문을 싣고 있는 것도 있으며, 2회 이상의 重刊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舊譜의 서·발을 함께 수록한 경우도 많다. 별도의 간행 기록이 밝혀져 있지 않은 경우 서문과 발문의 저자와 저술연대 기록은 족보의 편찬·간행연대를 추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일반 서적의 범례와 같은 것으로, 족보의 편찬 및 수록 원칙이 망라되어 있다.

世獻錄, 言行錄, 忠義錄, 世德錄, 誌狀錄 등 수록된 내용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대체로 始祖의 전설, 得姓事績, 姓貫의 연혁, 分派의 내력 등과 함께 주요 선조들의 碑文(墓誌文, 墓碣文, 神道碑文 등), 行狀, 年譜, 言行錄, 祭文, 著述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관련 자료로 鄕里地圖, 墳墓圖를 수록하기도 하였다. 글의 내용을 증빙하는 의미에서 여말·선초의 호적 관계 자료, 政案, 功 臣錄券, 八高祖圖, 榜目, 立案, 原情 등 학술적 가치가 높은 자료들이 轉載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족보의 실질적인 본문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우선 紙面을 가로 몇 개의 구획[段]으로 구분하는데, 4, 5, 6, 7단 등 다양한 구분이 있으나 대개는 6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조인 1世로부터 시작하여 아래 段으로 한 단씩 내려가며 2세, 3세로 이어지고 그 지면이 끝나면 다음 면으로 옮아가서 하나의 단에서 기록되지 못한 동일 세대의 구성원을 기록한다. 이때 매 면의 상, 하단 여백에는 천자문을 순서에 따라 면 수를 기록하여 이후 열람할 때 쉽게 대조할 수 있도록 한다. 각각의 인물에 대하여는 이름(一名, 初名, 兒名, 異名 등), 字·號(諡號, 封號, 徽號, 廟號 포함), 生沒年月日, 官職, 科榜, 勳業, 德行, 忠·孝·烈, 旌表, 문장, 저술 등 일체의 개인 관련 정보를 기록한다.
배우자는 해당 인물의 面註로 처리되는 것이 보통인데, 경우에 따라 配, 室, 娶의 차이를 두어 배우자의 상황을 구별하기도 한다.
자녀에 관하여서는 특히 出系와 入養, 嫡子와 庶子, 남자와 여자의 구별을 명백히 한다. 여자의 경우 여자 본인이 아닌 사위의 이름이 등재된다. 또 왕후 또는 부마 등 가문 내의 인물이 왕실과 관련을 맺게 되면 이를 자세히 기록하고 필요한 경우 해당 인물은 別行으로 처리하기도 한다. 墓地의 위치와 坐向을 기록하며 해당 인물 및 가족들의 世居地를 밝혀 놓은 것도 있다.

行列表, 藏書記, 藏板記, 刊記, 有司名單, 年表 등이 있다. 이 중 장서기와 장판기 및 간기는 대부문 표지의 이면이나 족보의 마지막 책 권말에 수록되는데, 족보책이나 板木의 보관 혹은 간행시기, 장소 등을 기록하였다. 유사명단에는 대개 족보의 편수를 담당한 사람들의 이름과 역할이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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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明鎬, 1999 「한국사 연구와 족보」 「한국사시민강좌」 제 24집, 일조각
이수건, 2000 「족보」「조선시대 생활사」 2, 역사비평사
옥영정, 2006 「한국족보의 역사」 국립중앙도서관 학술대회 발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