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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박씨(江陵朴氏)
要約情報
本貫 : 강릉(江陵)
姓氏 : 박(朴)
始祖 : 김주원(金周元)
詳細情報
성씨의 유래
시조 김주원(金周元)은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21세손으로 시중(侍中) 겸 병부령(兵部令)를 지냈다. 그는 신라 하대의 진골출신이며 아버지는 각간(角干)을 지낸 김유정(金惟靖)이다. 그는 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金仁問)의 5세손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무열왕의 셋째 아들인 문왕(文王)의 5세손이라고 한다. 785년(선덕여왕 6) 선덕왕이 후사가 없이 죽자 군신회의에서 그를 왕으로 추대하기로 하였다. 그는 경주의 알천 북쪽에 살던 곳에 갑자기 큰 비가 내려 알천을 건널 수가 없어 입궐을 못하였다. 이에 군신들은 이는 “하늘의 뜻이다”라 하여 상대등 김경신(金敬信)을 왕으로 추대하니 원성왕이었다. 비가 개인 후에 왕이 그에게 왕으로 즉위를 권하였으나 끝내 사양하고 어머니의 고향인 강릉으로 내려갔다. 왕은 그의 겸손함에 감복하여 명주군왕(溟州郡王)에 봉하고 명주, 익령(翼嶺), 삼척(三陟) 등 영동지방을 통치하게 하였으며 강릉을 식읍으로 하사하였다. 그 후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삼고 강릉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그의 아들 김헌창(金憲昌)은 헌덕왕 때 공주지방에서 군사를 일으켜 국호를 “장안(長安)”이라 하고 전라도와 충청도 지방을 한때 점령했으나 끝내 실패하여 자결하였다. 강릉김씨는 고려 건국 초기에는 저항하였으나 왕건의 설득으로 협력하게 되어 왕씨(王氏) 성을 하사받았다가, 조선이 건국 후에는 다시 김씨로 환원하였다고 한다.

주요 거주지
경기도 양주시 수동면 수산리
경기도 김포시 고촌면 신곡리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어비리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리
강원도 삼척시 북평읍 일원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일원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
강원도 철원군 마장면 대전리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 청라리
충청남도 당진군 당진읍 일원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일원
황해도 장단군 일원
황해도 안악군 대원면 원룡리
함경북도 부령군 부령면 일원
평안북도 철산군 점면 신곡리
居住地情報